
이사 한 자리를 가져오는 데 몇 %가 필요할까
2026-09-07
9월 10일,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바꾸는 계산법
2026년 9월 10일,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회사는 더 이상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1998년 도입 이후 28년간 사문(死文)에 가까웠던 조항이, 대부분의 상장회사가 정관에 넣어둔 배제 장치를 잃고 처음으로 작동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일반주주가 실제로 던지는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내 지분으로 뭘 할 수 있는데?” 이 글은 그 질문에 숫자로 답하려는 시도입니다.
1. 9월 10일, 무엇이 바뀌나
• 자산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미 배제 조항을 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 인원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됩니다.
• 이미 지난 7월 23일부터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하여 3%까지만 인정하는 ‘합산 3% 룰’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집중투표는 자동으로 실시되지 않고 청구가 있어야 발동합니다. 상법 제542조의7에 따라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총회일 6주 전까지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청구해야 합니다.대부분의 상장회사에서 이 제도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첫 무대는 2027년 정기주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법적으로는 2026년 9월 10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이사 선임 주주총회부터 적용되므로, 임시주총이 먼저 열리는 회사에서는 2026년부터 적용될 수 있습니다.
2. 필요 지분율은 어떻게 계산하나
집중투표에서 주주 1인의 의결권 수는 보유 주식 수 × 이번에 선임할 이사 수이고, 이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습니다. 후보별로 따로 표결하는 대신, 후보 전원을 한 번에 놓고 득표순으로 당선자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발행주식 100주 회사에서 이사 3명을 뽑는다고 해보겠습니다. 26주를 가진 A는 78표, 74주를 가진 B는 222표를 갖습니다. A가 78표를 후보 한 명에게 몰아주면, B는 자기 후보 셋 모두에게 79표씩(총 237표) 줘야 막을 수 있는데 B에게는 222표뿐입니다. 26%가 74%를 상대로 이사 1석을 확보합니다.
필요 지분율 = 확보하려는 이사 수 ÷ (이번에 선임할 이사 수 + 1)
여기서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집중투표를 통해 1명의 이사를 뽑는데, 25%나 필요한 것이라면 실제로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맞는 지적일 수도 있지만, 이 계산에는 빠진 변수가 있습니다. 분모는 발행주식총수가 아니라 주주총회 당일 출석해 실제로 행사된 의결권입니다. 주주총회에 출석하지 않는 주주의 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필요 지분율 = 출석률 × 확보하려는 이사 수 ÷ (선임할 이사 수 + 1)
검산해 보겠습니다. 발행주식 1,000만 주에 이사 5명을 선임하고 출석 주식이 700만 주인 회사에서, 일반주주 연대가 12%(120만 주)를 모으면 의결권은 600만 표입니다. 지배주주 측은 2,900만 표를 갖지만, 후보 5명 모두가 600만 표를 넘기게 하려면 3,000만 표가 필요합니다. 100만 표가 모자랍니다. 어떻게 배분하든 연대 후보의 당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문턱만 넘으면 상대의 전략과 무관하게 결과가 확정되는 것, 이것이 집중투표제가 ‘보장’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출석률을 반영해 이 문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 7명을 선임하고 출석률이 70%인 회사라면 8.75%로 이사 한 자리가 확보됩니다. 위 검산의 조건(이사 5명·출석률 70%)에 해당하는 칸은 11.67%이고, 연대가 모은 12%가 그 문턱을 넘었던 것입니다.
3. 그런데 기업은 이미 분모를 손봤다
표를 다시 보면, 필요 지분율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출석률이 아니라 ‘이번에 선임할 이사 수’입니다. 출석률 70% 열을 보면 이사 7명일 때 8.75%인 문턱이, 3명으로 줄면 17.50%로 두 배가 됩니다. 기업들은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202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미 두 가지 정관 변경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이사 정원 상한 설정으로, 한 번에 선임되는 이사 수 자체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차임기제로, “이사별로 임기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시킵니다. 이사가 9명이어도 매년 만료가 2~3명뿐이면 매 주총에서 선임할 이사 수는 2~3명에 그칩니다. 2012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대만의 경우에도 초기 소수주주 추천 이사가 급증했으나, 이후 회사가 이사회 규모를 줄이는 등의 대응을 하면서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런 안건들이 실제로 가결됐다는 사실입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2026년 정기주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한 규모로 나타났습니다. 코스피200 기업 가운데 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유연화하는 안건은 21개사가 상정해 95%가 가결됐고, 이사 수를 줄이거나 정원 상한을 설정하는 안건도 25개사 중 92%가 통과됐습니다. 이러한 정관 변경은 그 자체로 위법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한 번의 주총에서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를 줄이거나 이사의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시켜 집중투표의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상당수 안건에 반대했음에도 대부분 가결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승부는 3월 주총의 이사 선임 안건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정관 변경 안건에서 이미 시작됐습니다.
4. 더 낮은 문턱은 감사위원회에 있다
표의 숫자가 여전히 부담스럽다면, 문턱이 근본적으로 다른 통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분리선출 감사위원입니다. 이 결의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합쳐서 3%까지만 인정됩니다. 45%를 보유한 지배주주도 3%짜리 주주가 됩니다. 회사가 전자투표를 도입했다면 발행주식총수 4분의 1 요건도 없이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만으로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상법 제542조의12 제8항).
일반주주 입장에서 현실적인 첫 목표는 이사회가 아니라 감사위원회입니다. 다만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에 집중투표가 적용되는지는 실무상 견해가 갈리는, 2027년 주총 전에 정리되어야 할 쟁점입니다.
5. 지금 확인해야 할 네 가지
• 자산총액 2조 원을 넘는가. 집중투표 의무화와 감사위원 2명 분리선출은 이 기준에만 적용됩니다.
• 정관에 방어 조항이 들어왔는가. 이사 수 상한, 임기 차등 조항. 2026년 3월 이후 변경 전후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내년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가 몇 명인가. 표의 분모가 되는 숫자로, 사업보고서 임원 현황에서 셀 수 있습니다.
• 6주 전 기한을 역산했는가. 직전 연도 정기주총일이 3월 하순이었다면 집중투표 청구기한은 대체로 2월 초·중순이다. 실질적인 준비 기간은 약 5개월입니다.
표가 말하는 8.75%, 11.67%는 개인 한 사람이 넘을 수 있는 문턱이 아닙니다. 집중투표제는 흩어진 지분을 한 후보에게 모을 수 있게 해줄 뿐, 모으는 일은 여전히 주주들의 몫입니다. 28년 만에 조항이 깨어나는 7일 뒤, 기업들은 이미 정관을 고치며 준비를 마쳤습니다. 준비가 필요한 쪽은 이제 일반주주입니다.